Search

남반구 최고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上) - 매경프리미엄 - 매일경제

architectaia.blogspot.com
[효효아키텍트-40] 브라질 대표 건축가인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1907~2012)는 리오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934년 그곳 국립미술대학(Escola de Belas Artes)을 졸업한 다음해 스승 루치오 코스타(Lucio Costa, 1902~1998)가 진행하는 리우의 브라질 교육보건부 건물(Minstry of Education and Public Health. 1936~1943) 신축 설계에 참여한다.

여기에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컨설턴트로 관여하고 있었다. 니마이어는 르코르뷔지에의 브리즈 솔레이(Brize-soleil·햇볕을 가리기 위해 건물 창에 댄 차양), 필로티 등 디자인을 접한다. 교육보건부 건물 북쪽 파사드에 수직 핀은 고정하고, 수평 핀은 태양 위치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차양을 쳤다.

성 프란시스 교회(Church of St Francis, 1943) /사진=wikimedia이미지 크게보기
성 프란시스 교회(Church of St Francis, 1943) /사진=wikimedia 성 프란시스 교회(Church of St Francis, 1943)는 브라질 중부 도시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의 팜풀라(Pampulha) 지역 호숫가에 위치한다. 교회를 덮는 주 아치형 천장(Vault)을 가운데에 두고 크고 작은 볼트들이 연속적으로 구성되는 형태다. 호수 정면에 배치된 이 교회는 건너편에서 보면 연속된 볼트 구조가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어울린다.

20세기 전반 종교 건축물은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때다. 니마이어는 새로운 건축 재료인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여 현대적 공법으로 곡선의 조형미를 살린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건축가로 차츰 명성을 쌓아가던 1945년 니마이어는 브라질 공산당에 가입한다. 쿠바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는 "Niemeyer and I are the last communists!"라고 말한다. 1946년 니마이어는 미국 예일대학 측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나 미국 정부는 비자 발급을 거부한다.

니마이어는 브라질의 산, 강, 바다가 보여주는 선과 여체의 선을 그렸다. 건물이 아름다우면 기능은 저절로 해결된다(form follows beauty)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

뉴욕 유엔본부(United Nations Headquarters. 1953) /사진=wikimedia이미지 크게보기
뉴욕 유엔본부(United Nations Headquarters. 1953) /사진=wikimedia 1947년 니마이어는 뉴욕 유엔본부(Unired Nations of Headquaters. 1947~1953) 설계에서 르코르뷔지에를 다시 만난다. 르코르뷔지에를 견제하는 설계 책임자 월리스 해리슨(Wallace harrison, 1895~1981)의 지원으로 니마이어 안이 회원국 다수의 지지로 채택된다.

회원국들의 선호에도 불구하고, 니메이어는 르코르뷔지에의 주장과 압력, 낮고 큰 곡선 지붕의 총회(general assembly) 건물을 르코르뷔지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사무국(secretariat) 싱글 타워만 챙긴다. 1953년 니마이어는 미국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미국 정부는 비자 발급을 거부하여 무산된다.

니마이어 자택(the House at Canoas, Casa das Canoas. 1953)은 걸작으로 꼽힌다. 강철 기등과 투명한 유리벽, 곡선의 지붕이 특징이다. 집과 수영장 사이에 놓이면서 집 안까지 뚫고 들어온 화강암은 설계 당시부터 있던 자연석이다.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공간은 화강암 옆 계단으로 이어진 지하에 배치했다. 2007년 그의 100세 기념파티가 열린 곳도 Casa das Canoas다.

브라질 국회 의사당(National Congress of Brazil. 1960) /사진=wikimedia이미지 크게보기
브라질 국회 의사당(National Congress of Brazil. 1960) /사진=wikimedia 브라질 중부 고원지대 신행정수도 브라질리아(1956~1960)는 루치오 코스타의 비행기 형태의 마스터플랜에 기초하여 니마이어는 국회 의사당(national congress. 1960), 최고재판소 등 정부 청사 건물들과 브라질리아 대성당(Catedral Brasilia, 1970)을 설계한다. 도시 조경은 부를레 막스(Burle Marx)가 담당한다.

비행기 몸체는 동서로, 날개는 남북으로 뻗어 있다. 몸체는 업무 지역으로, 날개는 주거 지역으로 계획되었다. '50년 진보를 5년 안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쿠비첵 대통령이 주도하여 4년 만에 주요 건물들이 준공되면서 1960년 4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이전한다.

국회 의사당은 행정수도 브라질리아의 랜드마크다. 낮고 길게 이어지는 본 건물을 지지대 삼아 이전 유엔본부 스타일의 박스 오피스 트윈 타워에 둥근 돔과 '접시' 형태를 옆에 두었고, 대지에서부터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보행로를 보태 시민들이 건물 상부로 진입할 수 있게 했다.

수도 이전 프로젝트는 브라질리아의 모든 아파트를 국유화하여 임대하였고, 일반 근로자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게 하는 등 획일적인 사회주의적 이념을 담았으며, 기능과 용도보다는 도시 미관과 상징성을 우선하는 모더니즘을 지나치게 강조해 '생활에는 불편한 도시'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균형 잡힌 내륙 발전을 통한 국가 성장이라는 목표의 수도 이전은 무리를 가져왔다. 브라질 경제를 인플레이션과 정쟁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계기가 됐다. 신수도를 건설하고 이전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외자 도입과 통화를 남발하여 인플레이션과 거대 규모의 국가 부채를 초래했다. 니마이어는 브라질리아대학 건축학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모더니즘 양식을 따라 건설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도시인 브라질리아는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프랑스 공산당 본부 건물(French Communist Party Headquarters. 1965-1980) /사진=wikimedia이미지 크게보기
프랑스 공산당 본부 건물(French Communist Party Headquarters. 1965-1980) /사진=wikimedia 경제난과 내정 불안은 1964년 군부 쿠데타를 불러왔다. 쿠비첵이 실각하고 수도 이전에 깊이 관여한 공산당원인 니마이어는 프랑스로 망명한다. 파리 도착 후 프랑스 공산당 본부 건물(Communist Party headquarters. 1965~1980)을 설계한다. 존경하는 르코르뷔지에의 도그마에서 빠져나와 브라질 고유의 모더니즘을 추구했던 니마이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르코르뷔지에의 활동 본거지인 파리로 피신하게 되었다.

고국을 떠났지만 부드러운 리우의 산을 연상시키는 대회의장의 하얀 돔 지붕과 커튼월 글래스 빌딩 외관이 만들어낸 누워 있는 여체의 아름다운 곡선 같은 오피스 건물이 탄생했다. 프랑스 공산당 퇴진으로 건물이 비면서 프라다가 건물 전체를 패션쇼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던 디자이너 미우차 프라다(Miuccia Prada, 1948~)의 영향이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 자료 :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모현야옹이의 공간이야기 블로그, 세계 건축가 해부도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et's block ads! (Why?)




June 12, 2020 at 04:01AM
https://ift.tt/2XWuisO

남반구 최고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上) - 매경프리미엄 - 매일경제

https://ift.tt/2UGzwXI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남반구 최고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上) - 매경프리미엄 - 매일경제"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