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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서울은 죄가 없다 / 노은주·임형남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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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 부동산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무척 깊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값이 내리지 않고, 심지어 대책을 발표하면 놀리기라도 하듯 다음날 오히려 집값이 뛴다. 사실 집이 부족해서 집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주택보급률은 가구 수를 상회하는데도 굳이 그린벨트 해제를 시도하고, 도심과 강남 재개발 용적률을 올려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왜 나온 걸까. 온 나라가 큰일이 난 듯하지만 부동산 대책은 결국 세계 7위 규모의 ‘메가시티’ 서울에 집중된다. 서울은 욕망의 도시이고 인간미가 없는 도시이고 언젠가는 소돔처럼 망할 도시라고 생각하며, 여기서는 경제적인 이익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서울은 땅이 아니라 끝없이 재물이 솟아오르는 화수분일 뿐이다. 서울이 고유명사이면서도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다 보니, 구체적인 장소보다는 어떤 관념이나 개념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사람들은 편하게 서울을 욕하고 저주하고 팽개친다. 불을 쫓아 무모하게 뛰어드는 불나방들이 득시글거리는 천박한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며칠 전에도 누군가가 애꿎은 서울을 소환했다. 물론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가끔 저런 서울에 대한 저주를 들을 때마다, 억울함이 목에서 차오르고 뭔가 항변을 해주고 싶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평생 이곳에서 살아왔다. 서울은 나의 고향이고 삶의 기반이고 든든한 배경이다. 사람들이 서울을 욕할 때마다 만일 입장을 바꿔 내가 다른 도시나 마을에 가서 그곳을 욕하고 폄하하고 땅바닥에 패대기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 당연히 멱살 잡히고 큰 망신을 당할 것이다. 몇년 전 서울에 관한 책을 내고 독자들과 함께한 적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서울 토박이들이 여럿 오셨다. 그분들과 서울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을 잠시 공유했다. 마치 실향민처럼 하루아침에 살던 동네가 변해버리고 태어난 곳이 없어지고, 심지어 서울이라는 실제 도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심정 말이다. 한강변의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동네를 메워 아파트를 세우고 뻘을 채워서 면적을 넓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50년 가까이 퍼서 썼음에도 아직도 더 솟아오르길 기대한다. 도시가 천박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개발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서울을 이용해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런 집착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심지어 정책을 주도하는 관료들마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천박한 사람들이야말로 서울을 떠나고, 서울을 피가 돌고 살아 있는 뭉클한 땅으로 여기는 사람들만 남으면 좋겠다고, 이루어질 리 없는 일을 소망해보았다. 서울은 아무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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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4, 2020 at 03: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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