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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건축, 시대를 비추는 거울 / 노은주·임형남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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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 한국관광공사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력을 보면 정치가, 사상가, 변호사, 교육자였으며 또한 건축가였다고 적혀 있다. 건축을 전공하지도 않은 제퍼슨을 건축가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백악관 등의 미국의 초기 관공서 건축을 주도했고 버지니아에 ‘몬티첼로’라는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몬티첼로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저서를 탐독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팔라디오의 ‘빌라 카프라’라는 건축물을 참고하며, 독학으로 지은 집이다. 그 집은 그가 추구하는 실용적인 사상으로 건물의 토대를 만들었다. 르네상스의 건축을 신대륙에 이식하며 재료와 형태의 번안이 이루어졌고, 자동 미닫이문과 식료품 운반용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해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출현을 예고했다. 또한 신생국 미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여 혹자는 이 집을 제퍼슨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건축으로 쓴 자서전이라고 평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이란 물리적인 재료로 이루어지는 건조물이지만 그 이전에 생각의 집적체이다. 제퍼슨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철학자들은 건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철학을 보여주는 예가 많다. 우리나라만 해도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한강 정구, 우복 정경세 등 큰 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건축에 녹여내어 훌륭한 건물을 남겼다. 우리가 그들의 사상을 책으로 접하고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들이 남긴 건축물을 보면 그들의 세계관과 철학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다. 가령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에 가면 그가 이야기하는 ‘경’(敬)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남명의 산천재에 가면 ‘의’(義)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이럴 때 건축은 아주 좋은 책이며 아주 친절한 강연이다. 가끔 그런 건축이 만들어지는 시대는 무척 건강한 시대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 가령 국회의사당 같은 건물을 보자. 국회의사당은 한국 정치의 중심이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에서 철학과 이 시대의 정신을 읽을 수는 없다. 당시의 정치인들이 개입하며 만들어진 의미 없이 무겁기만 한 돔, 건물 주변에 가늘고 번잡하게 세워져 있는 열주 등 과시하고 싶어 하는 건축의 전형이다. 허황된 외관과 공허한 내면, 그 안에서 우리 시대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떤 상징과도 같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그동안 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과장된 규모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시선을 압도하려고만 할 뿐, 제대로 가치와 의미를 외관과 공간에 입히지 못한 채 지어졌다. 21세기 들어 갑자기 늘어나며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많이도 짓고 있는 공허한 관공서 건물을 보며, 문득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해봤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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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6, 2020 at 03:1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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