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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닮은 집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변방의 건축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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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최초 중국인 수상자 왕수

집을 짓다|왕수 지음|김영문 옮김|아트북스|368쪽|2만2000원

2012년 2월 전 세계 건축계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한 번도 세계 무대에 선 적 없어 국제 건축계에 무명(無名)이나 다름없는 중국인 건축가가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최연소 수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49세였던 그의 이름은 왕수(王澍). 중국에서도 변방으로 손꼽히는 우루무치 지역에서 자라 난징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항저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중국 국적자로는 최초 수상이었다. 1983년 이 상을 받은 I M 페이는 중국계 미국인. 전 세계 언론은 이 사건을 '왕수 쇼크'라 명명하며 대서특필했다.

중국에서 2016년 출간된 이 책의 부제는 '건축을 마주하는 태도'다. 왕수는 말한다. "한 세계를 만들 때는 가장 먼저 그 세계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집을 짓고 나서 이른바 조경을 하는 서양인의 관점과는 다르다." 항저우에 있는 중국미술대학교 교수인 그는 제자들에게 항상 이 세 마디를 건넨다. "건축사가 되기 전에 나는 먼저 문인이었다." "뭐가 중요한지 먼저 생각하지 말고 뭐가 정취 있는 일인지 먼저 생각하면서 그것을 몸으로 힘써 실천하라." "집을 짓는 일은 작은 세계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전 세계에서 통한 이 건축가의 힘이었다. 중국 옛 문인들이 집에 가꾸던 뜰 '원림(園林)'을 지향해 자연과 집이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왕수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는 '건축(建築)'이라는 단어마저 거부한다. 대신 '영조(營造)', 즉 시공간을 경영하고 공간을 짓는다고 말한다

왕수의 대표작인 중국미술대 샹산 캠퍼스.이미지 크게보기
왕수의 대표작인 중국미술대 샹산 캠퍼스. '샹(象)'이란 이름의 해발 50m짜리 산에 둘러싸인 곳이다. 자연스레 흔들리는 듯한 건축물은 서예의 글자 흐름과 비슷하게 건물이 샹산의 파동과 기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의미를 구현한 것이다. /아트북스
대표작 닝보역사박물관은 커다란 산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지었다. 멀리 있는 산이 더 뚜렷이 보이도록 그린 중국 옛 산수화 속 관념의 산을 염두에 두고 산을 잘라놓은 듯한 외관을 구현하려 했다. 대나무 조각 모양의 콘크리트와 스무 가지 이상의 옛날 벽돌 및 기와를 혼합해 벽면을 감쌌다. '와편장(瓦片墻)'이라 불리는 기법으로 중국미술대 샹산 캠퍼스를 지으면서도 적용했던 것이다. 철거된 건물에서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했더니 "현대화된 새로운 도시에 닝보에서 가장 낙후된 어떤 것을 굳이 표현해야 하냐"는 비판이 일었다. 왕수는 응수했다. "박물관이 가장 먼저 소장해야 할 것은 바로 시간이다." 관(官)의 우려와 달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타고나길 반골이었다. 대학 2학년 때 교수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나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선언했다. 스물네 살 때 '현대 중국 건축학의 위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써 중국 근대 건축계를 비판했다. 비판의 대상엔 톈안먼 광장 인민영웅기념비 등을 설계한 대가 량쓰청도 있었다. "이 학생은 정말 지나치게 광적이다"라는 평과 함께 학위를 받지 못했다. 이후로 독학했다. 1997년 아내 루원위와 함께 '아마추어 건축사무실'을 차렸다. 결혼 후 7년간은 아내가 주로 돈을 벌었다. 그는 내면을 탐구하며 심성을 가다듬는 데 힘썼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 대해 매우 진실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내가 지은 모든 건축은 자기 내면의 진실을 견지한 것에 불과하다. 아울러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 '집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할 수 있는 책이다. "좋은 건축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처음부터 순수하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 아름답다. '건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왕수는 답한다. "비가 내리면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용마루에서 어떤 선을 타고 흘러내리는지? 어디로 떨어지는지? 또 마지막에 어디로 흘러가는지 오래오래 바라본다. 우리가 이런 일에 흥미를 느낄 수 있으면, 건축물을 지어서 사람들이 비가 어디서 내리는지? 어디로 떨어져서 어디로 흐르는지? 그곳에서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모든 굽이와 변화가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원제 '造房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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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7,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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