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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와 건축을 융합한 건축가 왕수(王澍) (上) - 매일경제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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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보미술관(Ningbo Contemporary Art Museum. 2005년)
사진설명닝보미술관(Ningbo Contemporary Art Museum. 2005년)
[효효아키텍트-54] 왕수(王澍·Wang Shu, 1963년~ )는 저장성의 항저우(杭州)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항저우는 쑤저우(蘇州)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회자된다.

그는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태어났다. 우루무치는 사방이 바다로부터 2300㎞ 이상 떨어져 있다. 베이징에서도 4000㎞ 이상 떨어진 곳이다. 둥난(東南) 대학(전 난징공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1980년대 중국에는 현대 건축물, 건축가, 심지어 제대로 된 건축학조차 없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스물네 살에 논문 `현대 중국 건축학의 위기(當代中國建築學的危機)`를 써서 중국 근대 건축계와 건축사를 비판했다. 그가 비판한 대상에는 량쓰청(梁思成)도 포함됐다. 량쓰청이 누구인가, 1948년 겨울, 린뱌오(林彪)의 동북 야전군은 녜룽전의 화북야전군과 함께 100만 병력을 이끌고 베이핑(北平· 베이징의 예전 지명)과 톈진(天津)으로 밀고 내려왔다. 국민당 푸쭤이(傅作義) 장군이 베이핑 성 안에서 50만 병력으로 맞섰다.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명·청 제국의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아들이자 칭화대 건축학부 량쓰청 학부장도 다른 문화계 인사들과 같이 푸쭤이를 찾았다. 푸 장군은 장제스를 버리고 1949년 1월 공산당에 투항했다.


왕수는 살아있는 장인 시스템을 주목했다. 그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옛 가옥의 해체 현장에서 매일 아침 8시부터 한밤중까지 중국 사회에선 하위 계층으로 여기는 장인들과 먹고 자고 일하면서 전통건물의 구조와 설계를 샅샅이 배웠다. 이를 토대로 그는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정신을 되살려냈다.

1997년 왕수는 건축가인 아내 루원유((陸文宇·Lu Wenyu)와 함께 자신의 설계사무소인 `아마추어(業餘) 건축 스튜디오`를 차린다.

왕수는 `건축` 대신 `영조(營造)`를, `설계` 대신 `흥조(興造)`라는 용어를 내세운다. `영조`와 `흥조`라는 말에는 건축가 개인의 경험과 태도를 중시하고 건축 활동이 언제나 순수한 흥미에서 시작됨을 의미한다. `영조`와 `흥조` 모두 중국 건축 전통에서 가져왔지만 왕수는 근대 건축의 차갑고 형식적인 성격을 넘어서고자 한다.

쑤저우 대학 원정(文正)학원 도서관(Library of wenzheng college, 2000년)
사진설명쑤저우 대학 원정(文正)학원 도서관(Library of wenzheng college, 2000년)
쑤저우 대학 원정(文正)학원 도서관(Library of wenzheng college, 2000년)은 건물 절반을 지하에 둬 주변 자연을 압도하지 않도록 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고, 안에서 바깥을 조망하기를 자각한 건축`으로 자평한다. 이 도서관의 사각형 구조 안에서 건축은 예기치 않게 방향 바꿈을 한다. 서로가 크고 작은 모순 척도로 작용하고, 작은 장소의 불연속적 세밀한 나눔을 통해 건축은 스스로 상호 서사를 시작한다.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Xiangshan Campus, China Academy of Art. 2004. 2007)
사진설명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Xiangshan Campus, China Academy of Art. 2004. 2007)
항저우 남부 산군(山群)의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중국미술대학교(中国美术学院) 샹산캠퍼스는 단기간에 저렴한 공사비로 완공했다. 캠퍼스 용지는 `샹(象)`이란 이름의 작은 산(약 50m)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 측면 큰 산에서 훌러나온 두 줄기 작은 시내가 산의 남북 양 측면을 감돌다가 샹산 동쪽 끝에서 합류해 드넓은 첸탄강(錢塘江)으로 유입된다. 방대한 캠퍼스를 설계하면서 왕수는 캠퍼스가 그 작은 샹산과 공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중국 전통식 건축 구조인 대문에서 행랑채, 안채, 뒤채로 뜰(정원)과 건물을 겹겹이 조성해 각각의 뜰을 중심으로 겹채 대형 가옥군을 이루는 대합원(大合院) 형식에서 답을 찾았다.

샹산의 북쪽 측면 약 7만㎡ 크기의 캠퍼스(1기·2004년)는 열 동의 건축물과 두 개의 회랑 다리로 조성됐다. 현재 공공예술대학, 영상애니메이션대학, 도서관, 체육관으로 구성돼 있다.

재료를 선택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철거지의 전통 가옥에서 나온 폐기된 옛 기와와 벽돌 약 300만개를 재활용하고, 연결고리와 빗장은 시골 대장장이가 만들어준 것을 사용했다. 설계가 다량의 수공 작업으로 야기되는 전체 건조 과정의 수정과 변경 절차를 따라가도록 했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노임이 저렴해 전통 건축 기법인 수작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장성 동쪽 지역이기에 가능했다. 이 지역에서는 80여 종의 서로 다른 옛 기와와 벽돌이 발견된다.

캠퍼스와 샹산 사이에는 공터를 두어 농지와 시냇물, 연못을 그대로 보존케 하고 준설한 흙은 건축물 주변의 인공 복토로 사용했다. 시내와 연못가에 갈대를 다시 심었다. 샹산이 위치한 `ㅤㅈㅘㄴ탕`이라는 도시의 자연과 부합하는 경관을 만들어냈다. 건축물이 중국 서예의 글자 흐름과 비슷하도록, 위치를 정해 샹산에 대한 방향성을 드러내 보였다. `象` 글자의 흐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샹산의 파동과 기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의미를 구현했다.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원림(園林)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공사 기간 14개월이 걸린 샹산의 남쪽 측면 약 8만㎡ 크기의 캠퍼스(2기·2007년)는 건축예술대학, 설계예술대학, 실험가공센터, 미술관, 체육관, 기숙사와 식당이 배치돼 있다. 캠퍼스 전체 건축과 경관 조성에 모두 700만장에 달하는 옛 벽돌과 기와를 사용했다.

항저우·쑤저우에 인접한 닝보(寧波)는 항구 도시다. 닝보미술관(2005년)은 폐기된 지 오래된 항운 터미널을 재개발해 만든 건물이다. 왕수는 건축 용지를 선정할 때 이미 파괴된 장소나 버려진 장소에서 그 본래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포착했다. 닝보 사람들은 이 지역을 라오와이탄(老外滩)이라고 부른다. 닝보 사람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상하이와 불교 성지인 푸퉈산(普陀山)을 왕래했다. 건물은 길이 104m, 높이 18m의 아주 단순한 ㄱ자 모양의 몸체였다.

"중국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미술관이 없고 예술 박물관만 넘쳐난다. 예술 박물관은 과거의 물건인 경전적 작품을 진열할 뿐이다. 미술관의 예술은 목전에서 발생하고 예술 활동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하므로 `공장`과 유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술 및 미술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이러한 개념을 뒷받침한다. "진정한 미술관의 전시실은 현장 제작이 허락돼야 하고, 전시 준비 면적이 심지어 전시 면적보다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운 터미널 건물은 강변에 의지해 있고, 런민로 사이에는 넓은 공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폭 20m, 길이 60m의 공간을 공터와 병행하도록 펼쳐놓았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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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8, 2020 at 04:0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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